이계호 60회

은자동아 금자동아

내가 처음 어머니(이석희, 1914~2018)가 호건을 만드시는 걸 봤을 때가 1970년이었다. 큰오빠 아들 돌 때 호건을 만드시며 나더러 호랑이 이빨을 수 놓으라고 하셔서 했더니 “이빨이 듬성듬성하기도 하구나” 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호감투나 범감투라는 말을 쓰셨다. 


어머니가 우리들 6남매를 키우실 때는 어른들 모시고 바쁘게 사느라고 호건을 잊고 있었는데 큰 조카 돌 몇 달 전에 친척 아주머니께서 옛 호건을 찾았다며 당신 아드님 것을 만들어 달라고 들고 오셔서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하셨다. 실물을 보고 이리저리 연구해가면서 여러 번 다시 뜯고 고치면서 만드셨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 옛사람들이 참으로 지혜롭다고 감탄하며 신기해하셨다. 그 호건의 주인이 어머니의 사촌 동생이라니까 191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분 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데 나중에 그리로 보내주었다고 하셨다. 색이 많이 바랜 호건 생각이 난다.

굴레는 서울식이라고 하는데 증손녀들 때부터 만들어 주셨다. 실물은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만들기 시작하셨는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증손녀들만 태어나서 많이도 만드셨다. 그러다가 증손자들이 연달아 태어나서 더 기쁜 마음으로 호건도 여럿 만드셨다. 어머니는 3남 3녀에 손자 손녀들 17명, 증손주들 22명을 두셨다. 2010년 겨울, 쌍둥이 증손주들 돌 때 어머니가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시며 호건과 굴레를 만드셨다. 내가 도와드린다고 옆에 있기도 했는데 실제로 도움도 못 되었다. “손이 말을 안 들으니 구슬 꿰어 다는거나 네가 해라” 하셨는데 생각보다 어려워서 집어 던지고 다음에 해야지 하고 그냥 집에 왔다. 며칠 후 가보니 다 만들어 놓으셨다. 완성된 후에 금박 박아다 드린 게 겨우 한 일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호건 둘, 굴레 하나는 확보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보지 않았다. 비단 보다는 더 실용적인 소재로 아이들 겨울 모자로 만들어 봐야지 생각만 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박경자 부관장님께서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에 우리 쓰개에 대한 강의를 나가신다고 하여 나는 복사를 떠놓고 강의에 혹시 도움이 되려나 해서 드렸다. 나중에 보니 박물관에 기증이 되었다.

우리 아들아이 돌 때는 바지저고리, 조끼, 마고자, 버선, 두루마기, 전복, 호건까지 돌복 일습을 손수 지어서 미국으로 보내주셨다. 입는 순서까지 써서 보내주셨다는 데 사진을 보니 한 번도 제대로 옷을 입히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 글을 쓰며 사진을 찾아보니 마고자에 전복을 입혀서 돌상에 앉혔다. 그 당시에는 옷 순서를 잘못 입혔다고 하셔도 별 잘못인지도 몰랐다. 박물관에서 일하다 보니 조금 보고 배운 게 있어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내 잘못을 깨닫는다. 정성껏 만들어 보내주었는데 옷을 제대로 입히지도 못했으니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정말 죄송스럽다.


돌날에는 붓글씨로 “은자동아 금자동아 수명장수 부귀동아...”라는 자장가를 부채 모양으로 써두셨다가 우리가 귀국하니 주셨다. 늦둥이 막내딸인 나의 아들을 위해 돌날 당일 아이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씨 쓰시는 어머니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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