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55회

귀중한 할아버지의 망토

할머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고 심방도 자주 가시고 언제나 잘 웃으시는 분이다. 연년생으로 동생이 태어나서 나는 자연히 할머니가 돌봐주시고 중학교까지 할머니와 한방을 쓰며 할머니의 사랑을 듬쇥 받으며 자랐다. 할머니는 목사님 3분의 축수와 송영을 받으며 고목이 스러지듯이 세상을 떠나셨다. 


남자 애기들 한복은 내 동생들, 이종범(1950년생)과 이종호(1953년생)가 입던 옷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반갑게 찾아냈다. 양단두루마기, 솜저고리, 솜바지 등 겨울 옷 일습과 항라 저고리, 두루마기 등 여름 옷 일습이다.

식물생리학자이신 아버지(이민재, 1917~1990)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창립 때부터 교수로서 생물학 계열의 식물학과, 동물학과, 해양학과, 미생물학과 창설에 기틀을 마련하셨고 학술원 부회장, 문교부 차관, 강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셨다. 아버지는 우리 4남매가 모두 서울대에 진학하고 직계 가족 내에서 모두 13명의 박사가 배출된 것에 대해 늘 자랑스러워 하셨다.


어머니(이혜경, 1925년생)는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후에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으셨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을 위한 한국요리 강습회도 몇 달간 하셨다. 이때 입으셨던 한복들도 이번에 기증하였다. 1957년에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라는 책을 숙명여대에서 같이 강의를 하신 조선시대의 마지막 수라상궁 한희순선생님, 요리연구가 황혜성선생님과 함께 내셨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은 한상궁님이 우리 집에오셔서 직접 조리해서 상차림 하시고 아버지가 촬영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때 햇빛 좋은 마당에 내어놓고 사진 찍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웨딩드레스는 1973년 6월 결혼 때 오리지널리 이신우(48회)씨가 손수 디자인 해주셨다. 진주 구슬을 직접 꿰매주시고 베일에 관까지 정성껏 만들어주셨다. 양장점은 예전 서울대 문리대 정문에서 혜화동 쪽으로 큰 길가에 있었다. 내 마음에 맞게 디자인을 해주셔서 자주 찾아다녔다. 


우리 4남매 중에 내가 맏이이고 내 여동생 이인경과 두 올케인 이우경, 송은승이 모두 64회 경기 동문이다. 64회 동기가 집안에 셋이나 있었는데 여동생은 안타깝게도 2015년 고인이 되었다.


나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1995년과 2003년 두 차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초청연구관으로 2004년에는 미국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초청연구관으로 일한 경험이있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경기도박물관에서 학예실장과 관장으로 있었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초대 경운박물관장으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부산박물관 관장으로 일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는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있었으며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올림픽공원 내 백제 왕도인 몽촌토성에 자리 잡은 서울시립 한성백제박물관 초대관장을 마지막으로하고 은퇴하였다.

내가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화관 또 녹의홍상 혼례복 등 한복을 경운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박경자 부관장님께서 마침 기증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웨딩드레스가 더 있었으면 했다고 반가워하셨다. 어머니께서 간직하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망토, 어머니 아버지의 한복, 동생들 어릴 때 입던 한복 등 여러 점도 함께 기증하였다. 


할아버지(이용석, 1888~1939)는 회령 출신으로 여러 사업을 하시면서 육영사업과 기독교 전파에도 힘쓰셨고 독립운동도 지원한 분이다.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공산주의가 세력을 펴나가자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의 사업을 서둘러 정리하고 대가족을 이끌고 38선을 넘어 서울에 안착하셨다. 온 식구를 데려오느라 아버지는 월경 안내인을 고용하고 여러 차례 위험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어야 했다고 하셨다. 식구 중에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었다고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늘 말씀하셨다.


해방 전에 어머니(오송죽 吳松竹)는 여고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이셨던 아버지(심명언 沈明彦)와 결혼하신 후 일본 디자인 학교에서 뒤늦게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셔서 우리들 어렸을 때 예쁜 원피스를 손수 만들어서 입혔습니다. 그때는 어린이들도 한복을 많이 입을 때라 우리들이 입은 옷이 동네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주문도 들어왔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의 의상에 대한 열정이 특별했습니다.


해방 후 종로에서 어머니 성함 중 송(松)자와 집 옥(屋)자를 쓴 송옥(松屋)양장점이 탄생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성복이 없었기에 송옥의 맞춤 의상은 소문에 소문을 타서 서울의 멋쟁이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몇 년 후에 6.25전쟁이 나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나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치수를 재는 줄자 하나를 챙겨 들고 할머니, 큰집 식구, 우리 식구 12명의 대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생소한 부산에서 많은 식구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답니다. 항상 의상에 대한 열정으로 사셨던 어머니는 부산에서도 의상실을 열기로 하고 발이 부르트도록 마땅한 장소를 찾아 다니셨습니다. 운 좋게 부산의 중심지인 광복동에서 송옥을 다시 열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송옥이 왔다니까 부산 멋쟁이, 서울에서 피난 온 분들이 모여들어서 주문받은 옷을 다 만들어 낼 수 없을 정도로 번창하였습니다.


서울 수복 후에는 마침내 명동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맞춤복은 물론 여학생 교복까지 하게 되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어머니는 맏딸인 나와 동대문 광장시장에 가서 옷감 사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시장을 돌면서 좋은 옷감을 고르는 안목이 대단하셨습니다. 송옥 사장님이 어떤 옷감을 사는지, 어떤 단골집에 가는지, 주위의 관심이 대단했고 어머니가 고른 옷감은 곧 유행이 되곤 했습니다. 수입 옷감 도 썼지만 그 당시 한국 방직회사에서 품질 좋은 옷감들을 생산해 내서 국산 옷감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거의 맨손으로 고향집을 떠나 남쪽으로 올 때 할머니(윤선정, 1887~1972)는 할아버지 코트 2벌을 챙겨 오셨다고 한다. 이 중 한 벌이 이번에 기증한 망토이다. 1.4후퇴로 피난갈 때 이 코트들을 아주 요긴하게잘 사용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업고 코트를 뒤집어 쓰고 걸어가셨다고 한다. 코트 한 벌은 안이 밍크로 된모직 코트였는데 나중에 모피를 뜯어내서 할머니가 숄로 사용하셨다.


할머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고 심방도 자주 가시고 언제나 잘 웃으시는 분이다. 연년생으로 동생이 태어나서 나는 자연히 할머니가 돌봐주시고 중학교까지 할머니와 한방을 쓰며 할머니의 사랑을 듬쇥 받으며 자랐다. 할머니는 목사님 3분의 축수와 송영을 받으며 고목이 스러지듯이 세상을 떠나셨다. 


남자 애기들 한복은 내 동생들, 이종범(1950년생)과 이종호(1953년생)가 입던 옷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반갑게 찾아냈다. 양단두루마기, 솜저고리, 솜바지 등 겨울 옷 일습과 항라 저고리, 두루마기 등 여름 옷 일습이다.

식물생리학자이신 아버지(이민재, 1917~1990)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창립 때부터 교수로서 생물학 계열의 식물학과, 동물학과, 해양학과, 미생물학과 창설에 기틀을 마련하셨고 학술원 부회장, 문교부 차관, 강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셨다. 아버지는 우리 4남매가 모두 서울대에 진학하고 직계 가족 내에서 모두 13명의 박사가 배출된 것에 대해 늘 자랑스러워 하셨다.


어머니(이혜경, 1925년생)는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후에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으셨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을 위한 한국요리 강습회도 몇 달간 하셨다. 이때 입으셨던 한복들도 이번에 기증하였다. 1957년에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라는 책을 숙명여대에서 같이 강의를 하신 조선시대의 마지막 수라상궁 한희순선생님, 요리연구가 황혜성선생님과 함께 내셨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은 한상궁님이 우리 집에오셔서 직접 조리해서 상차림 하시고 아버지가 촬영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때 햇빛 좋은 마당에 내어놓고 사진 찍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웨딩드레스는 1973년 6월 결혼 때 오리지널리 이신우(48회)씨가 손수 디자인 해주셨다. 진주 구슬을 직접 꿰매주시고 베일에 관까지 정성껏 만들어주셨다. 양장점은 예전 서울대 문리대 정문에서 혜화동 쪽으로 큰 길가에 있었다. 내 마음에 맞게 디자인을 해주셔서 자주 찾아다녔다. 


우리 4남매 중에 내가 맏이이고 내 여동생 이인경과 두 올케인 이우경, 송은승이 모두 64회 경기 동문이다. 64회 동기가 집안에 셋이나 있었는데 여동생은 안타깝게도 2015년 고인이 되었다.


나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1995년과 2003년 두 차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초청연구관으로 2004년에는 미국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초청연구관으로 일한 경험이있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경기도박물관에서 학예실장과 관장으로 있었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초대 경운박물관장으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부산박물관 관장으로 일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는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있었으며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올림픽공원 내 백제 왕도인 몽촌토성에 자리 잡은 서울시립 한성백제박물관 초대관장을 마지막으로하고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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