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54회

나의 어머니 임화공의 

단아한 한복

어머니(임화공 30회, 1924~2018)가 돌아가신 후 정리해야 할 유물들이 많았다. 남기신 유품들을 보니 어머니가 살아오면서 하셨던 일들에 관한 기록, 출판하셨던 책들, 관계를 맺었던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귀하게 여기셨던 도자기들과 평생 입으셨던 옷들이 있었다. 유물을 정리하며 기증할 곳을 고민하던 중 우선 도자기들 중 일부를 경운박물관에 기증하고자 박물관 분들과 의논하다 어머님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박물관에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평생을 한복을 입으셨고 그것도 동네에서 바느질하는 분에게 맡기서 옷을 만들게 하셨다. 옷을 만들 일이 있으면 바느질하는 분이 와서 바느질감을 가지고 가서 옷을 해왔고 한 분에게 맡기면 십여 년씩 그분에게만 맡기셨다. 아마도 어머님이 입으셨던 한복은 서울의 북촌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한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을 사계절 솜을 둔 무명버선을 신으셨다. 한복에 대해서는 가장 편하고 경제적이라 하셨는데 우선 유행도 없고 매번 뜯어서 다시 만들면 새 옷이 된다고 하셨다.

외국에 전시회나 강연 등으로 여행할 기회가 많았는데 항상 한복을 입으시니 짐이 많아졌고 버선을 여유있게 가지고 가시느라 여행 가방에 버선들이 한쪽을 차지했다. 가끔 어머니와 옷감을 사러 종로의 보신주단 등 주단집, 그리고 동대문시장의 포목점을 함께 갔던 기억들이 새롭다.


특별하게 보이지 않던 한복이라 경운박물관에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한편으로는 의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박물관에서는 근대의 한복 복식뿐 아니라 직물도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하였다. 한복에 사용된 직물들의 종류와 문양들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고 그 시기에 유행하던 직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 경운박물관에는 300여 점의 한복을 기증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꽃꽂이를 가르치며 많은 제자를 기르셨고 순수한 우리말로 꽃꽂이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쓰기 시작하셨다. 전쟁 이후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던 시절, 여성들은 공적인 교육 이외에 요리나 꽃꽂이, 양재, 편물 기술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여성들을 대상으로 꽃꽂이 강의를 하고 동양 꽃꽂이 관련 서적을 일본의 슈휴노또모主婦の友사에서 10권을 출판하였는데 한글과 영문, 그리고 한 권은 불어로 출판하여 서양 사람들에게도 동양 꽃꽂이를 알렸다. 벌써 오래 전 절판된 책이지만 최근 아마존을 찾아보니 외국에서 중고 책으로 거래되는 것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1974년 도자기 가마를 송추에 마련하고 꽃꽂이를 위한 백자를 굽기 시작하였는데 모든 공정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소나무장작을 때서 실제로 제대로 나온 도자기 작품의 수가 제한적이었다. 남기신 백자 도자기의 일부를 경운회와 경운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 후에 한국 여성재단에 백자 도자기를 일부 기증하였다. 그리고 기록물과 사진, 소장품 등은 서울시립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어머님의 유품을 흔쾌히 받아주신 경운회와 경운박물관에 감사드리고 이를 위해 멀리까지 와주시고 정리하는데 고생 많이 하신 경운회 회장단과 장경수 관장님, 박경자 부관장님과 박물관 임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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