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자 54회

경기 가족상을 받은신 어머니

남가주 경운 송년회에서 경기 가족상을 받고, 오른쪽 끝이 필자, 2008년
남가주 경운 송년회에서 경기 가족상을 받고, 오른쪽 끝이 필자, 2008년

경운박물관에 몇가지 유물을 기증하면서 2012년 기증전 때를 돌아보게 된다. 대원군 시절에 시댁 조상님들이 입으시던 관복의 흉배와 뒤꽂이를 비롯해 외할머님이 입으시던 모피 달린 한복 배자 등을 기증했었다. 금사로 수놓은 흉배는 대원군의 큰아드님인 흥친왕(이재면)이 입으시던 것이다. 남편의 5대 조부님(홍병주)의 따님이 흥친왕과 결혼하신 관계로 몇 가지 유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기증품 외에도 시댁 대대로 소장해 오던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의 유물이 다른 동문들의 기증품과 함께 전시가 되어서 큰 보람을 느꼈었다.


이번에 조선시대 해금과 아이들 한복을 찾아 기증하면서 나의 외할머님이 입으셨던 우아한 한복으로부터의 기억을 되살려 보게 된다. 1893년 외할아버님은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시어 일본 중앙대 법대를 졸업하시고 신교육을 받아들이셨는데 아들 넷에 고명딸로 어머니(이정근 1927년 1월생)를 얻으셨다고 한다. 외할아버님은 1920년에 한성은행 동경지점에 근무하셨고 1926년 조선총독부 보안과에 몇 년간 근무하셨다. 1930년부터 여러 곳의 군수를 지내신 기록도 있다. 1945년 해방되면서 총독부 출신임에도 인성이 고운 외할머님의 내조와 음덕으로 동네 한국인들이 집 주위를 보호해주어 피해를 안 보셨다는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기억나기도 한다. 정부 수립 후에도 외조부님은 인천 해사국장, 항만청장 등 여러 공직을 거치셨고 초대 서울시 의원을 하시고 1956년 서울특별시 의회 임시의장을 끝으로 공직과 생을 마감하셨다.

신교육을 받으신 외할머님은 고명딸인 어머니를 경기고녀에 보내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시험 당일 맹장 수술로 시험장에 못 가게 되어 2차인 동덕여고에 입학하셨고 그 당시에도 사교육으로 피아노와 무용을 배우셨다. 졸업 후에 이화여대 가사과로 진학했는데 미군이 이대에 주둔하면서 휴학하게 되어 어른들의 혼담으로 결혼하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딸 셋(옥자 54회, 선자 56회, 경자 64회)을 모두 피아노, 무용과 미술 교육을 받게 하셨고 경기여고에 대한 한을 풀듯이 모두 경기여고를 졸업시켰고 음대와 미대를 졸업하게 만드셨다.


경기여고와 미국 남가주 경운회 총회에서 모교 100주년에 딸 셋 이상 경기여고 보내신 어머니에게 주는 경기가족상으로 꽃다발과 상패를 직접 받으셨으니 어머니는 자식 키운 큰 보람을 느끼셨고 우리는 큰 효도를 한 듯했다.

여아 당의, 1975년
여아 당의, 1975년

이번에 기증한 아기 돌복은 45여 년 전 미국에서 우리 아이들이 입던 것으로 친정 어머니가 한국에서 만들어 보내주신 것이다. 신교육을 받으신 외할머니 덕분네 어머니의 안목은 아주 탁월하시어 멋쟁이셨고 아이들의 돌복도 색과 감에서 뛰어난 감각이 엿보인다고 하여 기꺼이 기증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96세로 아직은 혼자 아파트에 살고 계신 데 일년 전 스텐트 수술을 받으신 후로 체력이 많이 떨어지시어 나는 거의 매일 점심을 만들어 가서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 세월을 못 이기시는 어머니를 대하면서 나의 미래 모습을 보는 듯하며 서글픈 마음이 든다. 최고의 사랑으로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식사를 더 드시게 해서 건강을 지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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