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애 50회

그 깊은 색의 흑단령(黑團領)

경운박물관이 개관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는 200여 점의 유물을 기증하였다. 


그 물건들은 집안의 보물이 아니었다. 버릴 수도 둘 수도 없었던, 먼저 가신 시어머님의 유품일 뿐이었다. 30여년 동안 제대로 펴보지도 않았던 집구석의 헌 물건들이 한 점 한 점 소중하게 정리되어 갈 때 나는 나의 가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경운박물관 개관전에 전시되었던 할아버님의 관복이 국립박물관에 다시 전시될 때는 한일합방 전후 시대를 돌아 보게 되었다. 더구나 이 흑단령과 어머님의 속옷, 그리고 남편의 애기버선을 대한항공 기내지에서 발견했을 때에는 이처럼 개인의 작은 물건일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기뻤다.


시댁인 林川 趙씨 집안의 유물을 다음과 같이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주로 한일합방 당시 서울토박이신 할아버님(趙在赫 1881)의 복식인 단령, 전복, 두루마기, 갓, 망건, 같은 선비의 물건들과 경기여고를 나오시고 일본유학을 하셨던 시어머님(劉和演 1912)이 친정인 황해도 해주에서 해오신 혼수 그리고 장손인 나의 남편(趙斗英  1937 정신과 의사)의 애기적 옷들과 집안의 침선들이다. 집안 여인들의 바느질 솜씨가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그 중에서 할아버님이 한일합방 때까지 관복으로 입으신 흑단령(黑團領)과 각대는 아버님이 소중히 보관하시던 유품이다.


할아버님은 유민원참사관(留民院 외무부이민국에 해당된다고 함) 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관직에 계섰지만 영어에 능통하시고 개화에 앞장섰던 젊은 관리였다. 조선말기에 의제개혁에 따라 관복이 간소화되어 소매폭을 줄이고 둥근 깃을 올린 착수(笮袖)의 흑단령은 당시 할아버님의 개혁의지가 반영된 것이리라.. 겉감은 흑록색 은조사(銀絛紗)를, 속감은 흑색 은조사를 넣어 진지하고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여름 관복이다. 


전시장에 서서 이 흑단령을 만나보며 쑥 빛, 쪽 빛 그리고 은조사가 어울려 빚는 그윽한 색,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단아한 선비의 기품이 우리 집안의 내력으로 이어가길 바라곤 했다. 애석하게도 할아버님이 서른도 안되어 나라가 망하면서 이 관복의 생명도 끝나고 만다. 할아버님의 의복 중 또 한가지를 들고 싶다. 소매가 좁은 저고리에 전복을 입도록한 사대부의 편복(便服)이다. 이른바 간편복이다. 소색 명주 저고리에 검은 전복 차림은 한국색의 뿌리를 찿는 “색에서 색으로” 전시에서 흑백의 색을 대표했던 적도 있다. 합방 후에도 이 전복차림을 외출복으로 입으셨다고 한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그 복식에 쏟은 정성이야 오죽했을까. 특히 옷 모양이 평범하고 단순할 때는 마땅한 색을 얻는 것이 개성이고 창의력이었을 것이다.


그 분의 외아들이신 우리 시아버님이 어느 일간지에 연재하셨던 “京城野話”라는 글에서 1900년대 초 그러니끼 이 의복들을 입으시던 시기를 떠올려본다. “우리동네를 널다리 골이라 부르는데 이 골목으로  쭈욱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큰 기와집이 나온다. 그 집은 꽤 넓은 집으로 대청이 있는 안채, 큰사랑 작은사랑으로 되어있는 사랑채, 동챗방 남챗방으로 되있는 챗방, 뜰 아래로 아랫방, 뒤꼍에는 큰광 작은광, 사랑뜰에 넓은 동산이 있고 그 밖으로 행낭채가 있었다. 이 집에서 조부모, 둘째 숙부, 셋째 숙부, 우리 부모, 사촌들 그리고 종조모들이 한솥밥을 먹고 살았으니 4대가 동거하는 대가족이었다 “ 라고 회고하셨다. 이 관복 한 벌이 그 대가족의 기둥이었다니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관복의 각대가 하도 작아서 전시 준비하시던 분이 “혹시 바뀐 것 아닌가. 아이 것 같은데”라며 물어온 적도 있었다.  


관복의 주인이었던 할아버님, 야심에 차있던 이 약관의 젊은이는 신학문과 신세계를 향한 희망과 꿈을 이 관복자락에 펼쳐 보았을 것이고, 나라를 잃고 관직을 일었을 때는 그 절망과 좌절을 이 깊은 색 속에 묻었을 것이다.


기증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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