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옥 32회

새롭게 태어난 어머니의 유물들

친정집 다락방 한 구석에는 늘 초라한 모습의 트렁크 하나가 있었다. 대청소 할 때마다 왜 버리지 않고 간수하고 계시는지 궁굼 하곤 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트렁크를 여시고 그 속에서 빛바랜 한복들과 속치마 고쟁이 같은 오래된 옷들을 꺼내셨다.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외할머님이 정성스레 챙겨주신 혼수의 일부라고 하셨다. 똑같은 옷감과 똑같은 모양의 옷이 여러 벌 있는가 하면 그 중에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채로 징궈놓은 진솔 옷도 여러 벌 있었다.

 

나도 옛날 골동품에는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건만 오래된 치마저고리의 옷 보퉁이는 내게 큰 관심을 끌지 못 한 채 그저 신기 할 뿐이었다. 6.25사변 때 피난을 떠나시며 중요한 살림살이를 집안 깊숙한 곳에 감추어 놓고 떠나셨다가 돌아와 보니 다른 것은 다 없어졌는데 다행히 이 트렁크와 오래된 앨범들이 남아 있었다 한다.

덕분에 어머니의 경기고녀 시절 사진과 약혼사진 결혼사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미 돌아가신 어른들의 모습까지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옛날 부모님 사진을 들추어 보니 활옷 입고 찍으신 부모님 사진에는 한복과 양복을 입으신 외삼촌 외숙모의 젊었을 적 모습이 보이고 결혼식 사진 옆에는 부모님 친구 분들의 들러리 서신 모습도 보인다. 


1925년생이신 (경기32회 김애옥) 어머니는 신의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전학 오셔서 덕수초등학교,경기고녀,숙전에서 공부 하셨다 한다. 경기고녀 배구 선수였던걸. 늘 자랑스레 이야기 하시곤 했다. 1944년 아버지 김기호(내과의사)씨와 결혼하여 3남1녀를 두셨고 장녀인 나는 지금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부모님을 자주 뵈며 지내고 있다. 88세인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많이 편찮으셔서 누워 계시고 바깥 거동이 어려우시다. 건강하실 때 더 많은 걸 여쭈어 보고 옛날 기억을 간직해 둘 것을......... 지금 후회가 된다. 


9년 전 어느 날 경기여고(52회)인 나는 동창회로부터 박물관을 위한 물품 기증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건강 하셨던 어머니와 나는 기증할 물건을 찾기 시작했고 울긋불긋 수가 놓인 이상한 모자도 찾아냈다. 막상 기증을 하려하니 퇴색되고 화려하지도 않은 옷들 앞에서 잠시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서 기증품 30여점을 들고 동창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얼마후 박물관 개관 전시회 때 가보니 어머니의 유품들은 얌전하게 손질되어 단정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상한 모자라고 했던 것은 1920년대 말의 굴레라는 것으로 끈은 없어졌지만 어머니가 어렸을 때 쓰셨던 것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전시장을 둘러 보신 후 기뻐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후 또 다른 저고리 전시회가 열렸을 때는 편찮으신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전시된 저고리 앞에서 기념 촬영도 했다. 촌스러워 보이던 어머니의 저고리는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옥색 관사에 자주색 갑사로 화장을 둘러 제작한 겹저고리”라는 설명과 함께. 그리고 얼마 후 먼젓번 기증 할 때는 별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했던 나머지 유물들도 모두 챙겨서 전달을 마쳤다. 박물관에서 새롭게 태어난 어머니의 유품들.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2012년 3월 30일 김애옥의 딸 김보영(52회)


기증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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